
헌법 제128조 제2항은 짧지만 무게가 큰 조항이다. 이 조항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개헌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고 정한다. 얼핏 보면 단순한 부칙성 규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헌법개정권이 특정 권력자의 지위 연장 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핵심 통제장치라고 보아야 한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의 의미: 대통령 임기연장·중임변경 개헌은 왜 “그때 그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을까
헌법 제128조 제1항은 헌법개정의 제안권자를 규정한다. 즉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이에 이어 제2항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헌법 제128조 제1항: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이 조항은 현행 헌법이 대통령의 지위와 관련된 개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핵심은 대통령도 헌법개정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임기연장이나 재출마 가능성과 결부된 개헌의 이익을 자기 자신에게 귀속시킬 수는 없다는 데 있다.
많은 경우 이 조항은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늘리는 개헌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단순화되어 설명된다. 그러나 정확한 법리는 조금 더 정교하다. 제128조 제2항은 개헌 제안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이라기보다, 그러한 개헌의 효력이 ‘그 개헌을 제안하던 당시의 대통령’에게 미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다. 다시 말해, 문언상 이 조항은 개헌의 성립 가능성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정헌법의 인적 효력 범위를 제한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지점은 조문 해석의 출발점이다. 헌법은 “제안할 수 없다”거나 “무효로 한다”고 쓰지 않고, “효력이 없다”고 쓴다. 이는 적어도 문언상, 대통령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이 절차를 거쳐 성립하더라도 그 효력이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는 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현행 헌법은 개헌의 자기적용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조항이 중요한 이유는 헌법개정이 일반 법률 개정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법률 개정은 구체적 정책 조정일 수 있지만, 헌법개정은 국가권력의 구조와 정당성의 기초를 다시 설계하는 행위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나 중임 가능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하고, 그 개헌의 효력을 즉시 자신에게 귀속시킬 수 있다면, 헌법개정권은 공적 권한이 아니라 권력 유지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제128조 제2항은 바로 그 위험을 제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1. 왜 기준시점이 ‘공포 당시’가 아니라 ‘제안 당시’인가
제128조 제2항은 매우 의도적으로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기준시점은 국민투표일도 아니고, 개정헌법의 공포일도 아니며, 시행일도 아니다. 헌법개정안이 제출되는 바로 그 순간이 기준이다.
이 문언은 단순한 기술적 표현이 아니다. 개헌의 효과로부터 배제되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관한 판단을, 정치 일정의 후행 단계가 아니라 개헌 구상이 공식적으로 출발하는 시점에 확정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권력자가 개헌 절차를 진행하는 도중 정치적 환경을 바꾸거나, 시점 조정을 통해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를 설계하는 여지를 줄이는 기능을 가진다.
결국 헌법은 “누가 이 개헌의 수혜자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묻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대답이 ‘개헌을 제안할 당시의 대통령’이라면, 헌법은 곧바로 그 효력을 차단한다.
2. ‘임기연장’과 ‘중임변경’은 어디까지 포함하는가
조문은 두 가지 유형을 병렬적으로 적시한다. 첫째는 대통령의 ‘임기연장’, 둘째는 대통령의 ‘중임변경’이다.
임기연장은 비교적 명확하다. 현행 대통령의 재직기간을 실질적으로 더 길게 만드는 개헌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컨대 5년 단임을 6년 또는 7년으로 바꾸고 이를 현직 대통령에게 곧바로 적용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임기연장이다.
반면 중임변경은 더 넓은 해석을 요구한다. 여기서 중임변경은 단순히 “중임을 허용한다”는 명시적 문구에 한정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현직 대통령의 추가 출마 가능성을 확대하거나, 재선 제한 구조를 완화하는 방식이라면 실질적으로 중임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 명칭이 연임이든 중임이든, 혹은 다른 용어를 사용하든, 실제 효과가 대통령의 추가 집권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라면 제128조 제2항의 통제를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조항은 표제나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본다. 권력구조 개편, 통치체제 개편, 대통령제 개편, 책임총리제 보완 등 여러 포장 아래 추진되더라도, 그 핵심 효과가 현직 대통령의 재직 연장 또는 재출마 허용에 있다면 헌법 제128조 제2항의 심사대상이 된다.
3. 이 조항은 ‘개헌 금지조항’인가, ‘자기적용 금지조항’인가
이 문제는 실무적으로도 학술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해석 쟁점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제128조 제2항은 개헌 자체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조문은 개헌안을 제안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개헌안 전체를 무효라고 선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개헌의 효력이 특정인, 즉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정한다.
따라서 이 조항은 우선적으로는 ‘자기적용 금지조항’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언에 가장 충실하다. 대통령의 임기제도나 중임제도를 장래를 향해 바꾸는 개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제도변경을 자신의 지위 연장에 즉시 활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현실적인 의미를 가진다. 대통령제의 구조개편 논의는 민주사회에서 언제든 가능하다. 4년 중임제, 4년 연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등 여러 안은 학술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 문제는 제도 설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설계의 효과를 누가 언제 누리느냐다. 제128조 제2항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현직 대통령 본인’이라는 특수한 이해관계인을 분리해 낸다.
4. 헌정사적 배경: 왜 이런 조항이 들어갔는가
이 조항은 추상적 이론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 헌정사는 대통령의 연임 제한 완화나 철폐가 실제로 권력 장기화 수단으로 작동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69년의 이른바 3선개헌은 대통령의 연임 관련 제한을 바꾸어 당시 대통령의 추가 출마를 가능하게 했다. 이어 1972년 유신체제에서는 대통령의 중임 제한이 사실상 철폐되면서 장기집권 구조가 제도화되었다. 이러한 헌정사의 경험은 현행 헌법이 대통령의 임기와 중임 문제를 단순한 제도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자기방어 문제로 다루게 만든 배경이 되었다.
즉 제128조 제2항은 단순한 부칙적 기술조항이 아니라, 헌정사적 반성과 권력분립 원리에 기초한 통제규범이다. 대통령이 헌법개정권에 참여하더라도, 그 개헌을 통해 스스로의 권력기반을 연장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5. 그렇다면 우회가 가능한가
실제 논의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우회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상정될 수 있다.
첫째, 하나의 개헌안 안에 제128조 제2항의 삭제 또는 완화와 대통령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함께 담는 방식이다.
이 경우에는 해석상 비교적 분명하다. 그 개헌안은 제출되는 순간 이미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설령 그 개헌안이 성립하더라도, 그 효력은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문언과 취지 모두에 부합한다.
둘째, 먼저 제128조 제2항을 개정 또는 삭제한 뒤, 후속 개헌으로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추진하는 2단계 방식이다.
이 경우는 더 복잡하다. 현행 헌법에 절대적 의미의 명문 개정금지조항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제128조 제2항 자체를 장래적으로 변경하는 것이 이론상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경로가 곧바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개정권 남용금지, 민주적 정권교체 원리, 권력의 자기재설계 금지라는 헌법 전체의 기본원리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방식은 극도로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즉 문언만 놓고 보면 회색지대가 남을 수 있지만, 헌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는 매우 강한 위헌적 의심을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
6. 국민투표 절차의 현실성과 제128조 제2항의 현재적 의미
최근 국민투표법 개정으로 헌법개정 국민투표 절차의 현실성은 이전보다 높아졌다. 사전투표, 재외투표 등 참여 장치가 정비되면서 개헌 국민투표는 더 이상 상징적 제도가 아니라 실제 가동 가능한 절차로 가까워지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제128조 제2항은 더욱 중요해진다. 개헌 절차가 정비되고 현실성이 커질수록, 헌법 내부의 실체적 통제장치에 대한 해석은 한층 더 엄밀해야 한다. 절차적 가능성이 커진 만큼, 실질적 한계에 대한 법리 정립도 더 선명해야 하는 것이다.
제128조 제2항은 그런 의미에서 단지 과거의 역사적 유물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의 헌법 통제조항이며, 개헌 논의가 구체화될수록 가장 먼저 점검되어야 할 기준이다.
7. 국민주권론으로도 제128조 제2항을 우회할 수 없는 이유
일각에서는 헌법의 최종결정권자가 국민이므로, 국민투표에서 다수가 동의하기만 하면 헌법 제128조 제2항 자체도 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국민이 최종 주권자’라는 명제와 ‘현행 헌법이 예정한 개정권력’의 범위를 혼동한다는 점에서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현행 헌법 질서에서 작동하는 헌법개정은 어디까지나 헌법이 스스로 정한 절차와 한계 안에서 행사되는 제도화된 개정권이다. 다시 말해 국민투표는 헌법 밖의 무제한적 결단이 아니라, 헌법 제128조부터 제130조까지가 설계한 절차의 마지막 단계다. 따라서 국민투표에서 다수의 찬성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그 개헌안이 현행 헌법이 정한 실체적 한계를 당연히 넘어설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제128조 제2항은 단순한 절차조항이 아니라,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개헌을 통해 곧바로 그 이익을 누리는 것을 금지하는 헌법의 자기방어 규범이다. 그렇다면 같은 헌법질서 내부에서 국민주권을 근거로 제128조 제2항을 현직 대통령에게 유리하도록 무력화하는 해석은, 결국 제128조 제2항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이 점에서 “국민이 원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식의 설명은 헌법국가의 구조와도 맞지 않는다. 국민주권은 헌법질서의 근거이지만, 그 주권의 행사 역시 헌법에 의해 제도화된다. 현행 헌법 아래에서의 국민투표는 헌법 안의 권한행사이지, 헌법 밖의 원초적 권력행사가 아니다. 따라서 제128조 제2항의 적용을 받는 사안에서 단지 국민투표 다수의 찬성만을 이유로 그 조항의 구속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현행 헌법의 해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현행 헌법 질서 안에서 제128조 제2항을 정면으로 우회하여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의 효력을 귀속시키는 길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 이를 끝내 관철하려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헌법개정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의 중단 또는 파괴의 문제로 성격이 바뀐다.
따라서 비헌법적이고 반헌법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런 논리를 실질적으로 우회할 수 있는 경로는 대통령이 헌정질서와 법치주의의 중단을 선언하고 사실상의 힘으로 강행하는 경우를 상정하는 것 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어디까지나 현행 헌법의 해석이나 개정 절차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 밖에서 헌법을 파괴하는 사태일 뿐이다. 그것은 ‘가능한 개헌’이 아니라 ‘헌정중단’이며, ‘합헌적 결론’이 아니라 ‘반헌법적 강행’이다.
맺음말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개헌 참여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다. 대통령도 헌법개정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개헌이 자신의 임기연장이나 중임 허용과 연결되는 순간, 헌법은 그 효력을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 돌리지 않는다.
이 조항의 핵심은 분명하다. 헌법개정권은 국가질서를 위한 권한이지, 현직 권력자의 지위를 재설계하기 위한 사적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제128조 제2항은 단순한 예외조항이 아니라, 권력의 자기연장을 제어하는 헌법적 안전장치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국 이 조항은 하나의 원칙을 말하고 있다. 헌법은 바꿀 수 있어도, 그 헌법을 바꾸는 권력이 곧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그 효력을 가져가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제128조 제2항은 오늘의 개헌 논의에서도 여전히 가장 날카로운 기준선으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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